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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은우박은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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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ocs(blog): 붓펜 에세이 제목과 도입 수정
1 parent 6905a12 commit bcca800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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## 쿠팡에서 붓펜을 주문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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## AI를 배울수록 붓펜이 필요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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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예를 시작한 방식은 꽤 현실적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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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로운 AI 활용법을 익힐수록 이상하게 붓펜이 필요해졌다. 문제는 기술이 어려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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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아니라, 따라갈수록 내가 나를 더 자주 채점하게 된다는 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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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발 트렌드를 따라가고, 이직을 위해 포트폴리오와 면접을 반복하는 동안 그 감각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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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 선명해졌다. 오늘은 무엇을 배웠는지, 어떤 결과를 냈는지, 얼마나 성장했는지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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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음 기회에는 어떻게 더 잘 증명할 수 있는지. 이런 질문은 분명 필요하다. 하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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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루 전체가 이 질문으로만 채워지면 삶이 평가표처럼 변한다. 잘한 날에는 잠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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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도하고, 거절당한 날에는 내가 통째로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진다.
11+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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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거창한 취미가 아니라,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.
13+
서예라고 부르기엔 조금 가벼워도 괜찮았다. 오히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커다란 벼루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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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은 화선지가 아니라, 퇴근 후 책상 위에 바로 꺼낼 수 있는 작은 시간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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쿠팡 주문 목록에 남은 제품명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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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`쿠레타케 붓펜 22호 + 리필용 3p`](https://www.coupang.com/vp/products/9091049414?vendorItemId=94009697780&sourceType=MyCoupang_my_orders_list_product_title)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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붓펜 본품에 리필 카트리지 3개가 함께 들어 있는 구성이고, 가격은 만원 남짓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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커다란 벼루도, 좋은 화선지도 필요하지 않았다. 퇴근 후 책상 위에 붓펜 하나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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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습용 종이 몇 장만 꺼내면 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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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군가가 보면 서예라고 부르기엔 조금 가볍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. 그래도 내게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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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정도의 가벼움이 필요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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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창한 취미를 시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. 오히려 반대였다. 더 배우고, 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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증명하고,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잠시 빠져나올 시간이 필요했다. 새로운 AI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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활용법을 익히고, 개발 트렌드를 따라가고, 이직을 위해 포트폴리오와 면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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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복하는 동안 마음이 조금씩 닳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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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제는 열심히 사는 일이었다. 이상하게도 열심히 살수록 내가 나를 더 자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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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점하게 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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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은 무엇을 배웠는지, 어떤 결과를 냈는지, 얼마나 성장했는지, 다음 기회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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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떻게 더 잘 증명할 수 있는지. 이런 질문은 분명 필요하다. 하지만 매일 이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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질문만 붙잡고 있으면 삶이 전부 평가표처럼 변한다. 잘한 날에는 잠깐 안도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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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절당한 날에는 내가 통째로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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퇴근 후 책상 위에 붓펜 하나와 연습용 종이 몇 장만 꺼내면 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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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채널 `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`, 줄여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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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원잘부의 [`미나미의 본모습`](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wdH5_I7UiHA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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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려한 무대 위의 사람이 아니라, 무대 밖에서도 자기 시간을 오래 연습해온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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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처럼 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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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상의 9분대부터는 서예 학원 교실로 보이는 공간이 나온다. 벽에는 연습한 글씨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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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품들이 빼곡히 붙어 있고, 선생님이 시범을 보인다. 12분대에는 미나미가 쓸 한자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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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개되고, 15분대에는 흰 저고리와 보라 치마를 입은 미나미가 종이 앞에 앉아 직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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붓을 잡고 획을 따라가는 장면이 이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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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예 학원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. 미나미의 서예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보다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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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업을 들으러 가고, 종이 앞에 앉고, 붓을 잡는 시간을 자기 삶 안에 가지고 있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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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이 더 크게 보였다. 바깥에서 계속 평가받는 일을 하면서도, 적어도 서예 교실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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앉아 있는 동안만큼은 오늘의 호흡과 손끝에 집중하는 사람처럼 보였다.
33+
영상 중반부에는 서예 학원 교실로 보이는 공간이 나온다. 벽에는 연습한 글씨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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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품들이 빼곡히 붙어 있고, 미나미는 종이 앞에 앉아 붓을 잡는다. 그 장면이 이상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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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래 남았다. 서예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보다, 바깥에서 계속 평가받는 일을 하면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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붓을 잡는 시간을 자기 삶 안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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![안원잘부 '미나미의 본모습' 영상 15분 20초 부근에서 미나미가 서예 학원 교실에 앉아 붓을 잡고 있는 장면 캡처](/images/posts/쿠팡에서-붓펜을-주문했다/minami-calligraphy-classroom.png)
38+
![안원잘부 '미나미의 본모습' 영상 15분 20초 부근에서 미나미가 서예 학원 교실에 앉아 붓을 잡고 있는 장면 캡처](/images/posts/AI를-배울수록-붓펜이-필요했다/minami-calligraphy-classroom.png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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출처: [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- 미나미의 본모습](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wdH5_I7UiHA&t=920s)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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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분 20초 부근 캡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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쓸모가 없어서,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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## 취미는 도망이 아니라 방어선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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## 취미는 도망이 아니라 돌아올 자리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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취미를 가진다는 말을 예전에는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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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는 시간에 하는 일, 스트레스를 푸는 일, 취향을 표현하는 일 정도로 여겼다. 요즘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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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금 다르게 생각한다. 취미는 삶의 본업에서 도망치는 통로가 아니라, 본업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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계속 버티기 위해 만들어두는 방어선일 수 있다.
160+
조금 다르게 생각한다. 취미는 삶의 본업에서 도망치는 통로라기보다, 본업의 언어에서
161+
잠시 나를 데려오는 자리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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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4-
방어선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.
163+
자리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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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경우에는 만원 남짓한 쿠레타케 붓펜 세트 하나면 충분했다. 리필 카트리지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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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함된 구성이라도 시작은 가벼웠다. 먹을 갈지 않아도 된다. 좋은 도구를 갖추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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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아도 된다. 누가 봐도 훌륭한 글씨를 쓰지 않아도 된다. 중요한 것은 붓펜을 잡는
179-
시간이 온전히 나를 향해 있는가다.
168+
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돌아오는가다.
180169

181170
하루 종일 바깥의 언어로 나를 설명하고 돌아온 날, 나는 종이 위에 조용히 한 글자를
182171
쓴다. 오늘의 불안이 조금 흔들린 선으로 남기도 하고,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은 날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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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+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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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+
"title": "AI를 배울수록 붓펜이 필요했다"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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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slug": "learning-ai-made-me-need-a-brush-pen"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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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description": "AI와 개발 트렌드, 이직 준비를 따라가며 나를 계속 채점하던 시기에 만원 남짓한 붓펜으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만든 이야기를 정리한다."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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